"산다는 건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고통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은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 문장은 이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흐르는 작가의 삶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안녕하세요.
문학 작품을 리뷰하는 더 케이 리뷰 The K Review 블로그입니다. 여기에 소개하는 문학 작품들은 그동안 메모하면서 읽은 것을 다시 정리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소설은, 미국 작가 폴 오스터의 생애 마지막 소설인 '바움가트너'입니다. 이 작품은 노년의 어느 철학 교수의 삶과 가족 상실, 가족에 대한 기억을 잔잔한 톤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작가와 주인공 바움가트너가 공유하는 이민자 가정의 배경, 교수이자 작가라는 직업, 가족 관계 등은 이 소설이 단순한 허구가 아닌, 작가 자신의 생애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폴 오스터(Paul Auster, 1947-2024)는 잘 알려진 미국의 뉴저지, 뉴욕 출신 배경의 작가이며, 그는 우연과 운명, 상실과 기억을 주로 탐구한 작가입니다. 뉴욕 3부작, 4321, 달의 궁전, 빵 굽는 타자가 등의 작품들이 있습니다.
줄거리를 소개합니다.
이 작품은 70대 철학 교수인 ‘사이 바움가트너’의 일상을 그립니다. 주인공 바움가트너는 10년 전, 사랑하는 아내 ‘애나’를 갑작스러운 해변 사고로 떠나보낸 뒤 슬픔과 상실감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움가트너는 교수직 은퇴를 앞두고, 뉴저지의 저택에서 홀로 노년을 보내는 중 소소하게 이런저런 일상적 혼란을 겪습니다. 물을 끓이다가 화상을 입거나, 계단에서 넘어지는 등 노화로 인한 육체적 쇠락과 기억의 희미함이 섞이는 일상입니다.
애나 죽던 날 밤, 1층에 위치한 아내의 작은 서재로 들어가 그녀가 남긴 서류와 원고들을 훑어보며 몇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꿈속에서 애나한테 걸려 온 빨간색 전화기를 들고 애나의 말을 듣습니다. 애나와의 첫 만남, 함께 했던 40년의 결혼 생활, 서로의 과거를 공유하며 깊어진 사랑의 기억들을 회상합니다. 이 기억들은 단순히 과거를 돌이키는 행위를 넘어, 상실을 견디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됩니다.

바움가트너는 죽은 아내를 알고 있던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치는 주디스와 대화를 하게되고 그녀에게 의지합니다. 이는 죽은 아내의 흔적을 마주하는 동시에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려는 인생 여정의 일부입니다. 아울러, 그는 살아 생전의 외할머니, 아버지, 그리고 암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일생을 떠올립니다. 그는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죽음이라는 거대한 공허감 앞에서도 여전히 삶이 지속될 수 있는 이유를 발견해 나갑니다.
바움가트너는 자신의 남은 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계속해서 존재할 것인지 고민을 하게됩니다. 우연히 애나의 작품을 연구하는 대학원생이 찾아온다고 하며, 미시간에서 뉴저지까지 차를 몰고 옵니다. 그 와중에 그는 운전을 하던 중 뛰어든 사슴을 피하려다 차 사고가 납니다. 이런 구도는 저자인 폴 오스터 자신의 삶과도 겹쳐지며 자전적인 성격을 띠기도 합니다. 폴 오스터는 이 소설을 출간 후 1년 뒤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음에 남는 문장들을 소개하자면,
고통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은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p.68.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는 연결되어 있으며,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이룩했던 깊은 연결은 죽어서도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p.77.
왜 다른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순간들은 영원히 사라진 반면 우연히 마주친 덧없는 순간들은 기억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지. p.141.
이 문장들은 바움가트너가 삶을 돌아보며 끝내 붙잡게 된 인생의 결론처럼 읽힙니다. 우리는 편하고 쾌적한 삶을 원하지만, 사람들과 관계에 얽히다 보면 결코 우리가 바라는 인생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언제나 경험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고, 오히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더 영향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제를 생각해 봅니다.
이 작품은 폴 오스터가 탐구해 온 우연, 상실과 회한이 주요 주제가 아닐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으로 인한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상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어떤 기억을 붙들고, 인생의 방향을 잡을지를 묻고 있습니다. 우연과 기억이 인간 존재를 어떻게 형성하는지에 대해 폴 오스터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저자는 기억은 왜 어떤 것은 사라지고 어떤 것은 남는지,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과연 실제 과거인지 아니면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인지에 대해 질문도 던집니다. 작가는 허구의 힘, 혹은 ‘이야기의 힘’이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고 생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바움가트너는 꿈속에서 죽은 아내 애나와 대화를 합니다.
저자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인식하고,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마주하는 일상의 아름다움과 소소한 순간의 가치를 발견하고자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은 살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다는 주장을 통해, 고통까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또한,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타인과 우주를 구성하는 많은 요소들과 연결된 작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연결이야말로 존재를 위한 본질적인 요소라고 말합니다.
느낀 점을 정리해 보면,
이 작품은 한 인간이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잔잔한 톤으로 기록했습니다. 폴 오스터는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 배우자의 부재와 그 상실 이후 겪는 이런저런 일들을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인생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상실을 어떻게 견디고, 삶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읽는 도중에, 결이 다르지만,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 가 떠올랐습니다. 이 작품 역시 한 노교수의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평범하면서 특이했던 삶의 여정을 담담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이 책 저책 읽다 보면, 느낌이나 분위기가 비슷한 작품이 서로 교차되는 때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상실과 우연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바움가트너'는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갈 것인가를 조용히 묻는 소설이었습니다.
오늘은 폴 오스터의 유작 '바움가트너'를 소개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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